■||| 낭송 / 달아난 은비녀 / 수필작가 남 미 숙 |||■

낭송 : 한 경 동 교수

김성기 기자 | 기사입력 2019/05/20 [06:06]

■||| 낭송 / 달아난 은비녀 / 수필작가 남 미 숙 |||■

낭송 : 한 경 동 교수

김성기 기자 | 입력 : 2019/05/20 [06:06]
 
 
 

▲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에서는  제 5회 샘터문학상 특별상의 영예를 안은 작가 선생님들의 작품을 낭송 으로 영상 편집하여 한분 한분 소개 하기로 하였다 회장 / 샘터문학 신문 발행인 이  정  록  / 편집주간  조 기 홍 / 보도 본부장  김성기

 

 

 

▲ 남미숙 시인, 시낭송가, 행사기획 연출가꿈꾸는고래도서관 대표 (현)(사) 한국전례원 울산지원장 (현)현대시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시,등단)(사) 샘터문학 자문위원(사) 샘터문인협회 회원詩나브로 동인     © 김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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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남미숙

시인, 시낭송가,
행사기획 연출가
꿈꾸는고래도서관 대표 (현)
(사) 한국전례원 울산지원장 (현)
현대시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시,등단)
(사) 샘터문학 자문위원
(사) 샘터문인협회 회원
詩나브로 동인

[시낭송 경력]
남미숙시낭송리사이틀 3회 공연
시낭송 CD 3회 발매

[수상 경력]
미래에셋생명 주변인문학상 수상(시부문)
대한민국 예술문화 시낭송명인증 수여

[저서]
시 한 끼 배불리 먹자, 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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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달아난 은비녀

남미숙

무남 독녀로 열아홉에 십 남매 
막내며느리로 시집왔다.
초등학교 졸업에 일본어도 곧잘 구사하는 신여성 그녀가 엄마였다.
엄마가 가르쳐준 그림일기 쓰기는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그림도 참 잘 그리셨던 것 같다.
양반집 참한 규슈 같은 얼굴이었지만
어떤 일이든 척척해내는 여장부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밖으로 돌며
풍류를 즐기셨고 엄마 속을 무지썩였다고
큰언니가 언제인가 말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 입에서 아버지의 대한 이야기는
늘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지만 한숨이 묻어있었다.
긴 한숨으로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와의 핑크빛
무드의 세월을 토해냈다.

70여년을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살지 않으셨다.
‘엄마’하고 입속으로 불러보면 정갈하게
빗어 넘긴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
내 마음에 파고든다.
어머니는 그랬다.
눈 뜬 아침이면 작은 경鏡을 꺼내시고는
끝이 뾰족한 빗으로 가르마를 가르고
곱게 빗질을 한 다음,
왼손 중앙에 한 방울 동백기름 떨어트려
두 손으로 비벼 가르마 아래로
곱게 손으로 빗질을 했다.
어쩌면 엄마는 아침마다 객지나간
오빠들 생각을 하며 옆에 빤히 보고있는 막둥이 걱정하면서 쓸어 내렸을 것이다.
 
엄마의 손길이 매끄럽지 않아 손바닥에 머리칼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거친 손끝에는 엄마의 고달픈 숱한 나날이 들락거린 세월을 말해 주고 있는 듯, 등이 가려우면 엄마의 손은 지금 나무로 만든 효자손 보다 시원했다.
고무장갑에 그 속에 속장갑까지 끼고도
주부 습진이니 하면서 병원을 들락거리는 호사를 누리지만 나는 맨손을 좋아한다. 
엄마의 정이 그리워서 일까?
나는 가끔 남편의 등을 긁어주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쪽진 머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서울 간 큰 오빠가 엄마 환갑 때 선물한
열 돈 짜리 은비녀다.
머리를 다듬을 때마다 한참을 들여다보는 은비녀 잠자리에 들 때는 얼마나 소중했으면,
하얀 보자기에 싸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곤 했다.
아마도 오빠를 맞이하는 것처럼
그윽한 미소는 은비녀를 더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은비녀가 엄마에게 오기 전에는
늘 청자빛이 도는 옥비녀가 전부였다. 5일장이 열리는 장날 아침,
장에 가져갈 물건을 광주리에 가득 채워놓고 머리를 손질하던 엄마 옆에 다소곳하게
놓인 비녀,
난 신기한 그 물건을 볼 때마다
호기심이 발동해 엄마가 머리를 고르는 동안에 장난감처럼 엄마도 찔러보고
내 손 바닥도 꾹꾹 눌러보고
손으로 구슬을 굴리듯 굴러도 보고
짧은 내 머리를 돌돌 말아 끼워보기도 하며 엄마의 사랑을 가지고 놀았다.
순간, 머리에 끼워놓은 비녀가 툭하고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나버렸다.

난, 큰 소리로 울기부터 했다.
아버지의 유품처럼 잃어버릴까봐
비녀 머리쪽에는 실 같은 것을 매달아
함께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가슴으로 토해내는 긴 호흡을 하면서 나를 야단 치기보다는 시장에 가야하는
일이 걱정인 것 같았다.
부엌으로 간 엄마는 땔감으로 준비해 놓은 작은 가지를 곱게 다듬어 비녀 대신 머리 꼽고는 시장에 가셨다. 그래도 참 예쁜 엄마였다. 가슴으로 담고있던 옥비녀가 사라진 다음에는 오빠의 사랑이 엄마와 함께 늘 동행했다.
은비녀를 꼽고 부터는 그런 일은 없었다.

따르릉 늦은 오후 아직 어둠이 걸어 나오기 전 한 통에 전화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엄마가 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속력을 다하여 달려갔다.
도착하여 엄마를 찾았을 때는 엄마는 보이지 않고 싸늘한 냉동고에서 들어갔다고 했다.
난 한 여름에 나의 모세혈관 하나하나가 다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를 느꼈다.
주변에서는 “뺑소니래?” 하면서 그리고
또 뒤따르던 오토바이가 또 치었다며 하면서 여기저기 웅성거렸고 머리 수술하였다는데 평생을 길은 머리를 다 잘라 밀었다고 했다. 염을 할 때도 난 엄마를 보지 못했다. 미신인지 모르지만 염하는 분이 그날의 운이 안 맞아 보지 말라고 했다.
늦은 마흔다섯 나이에 나를 낳고 홀로된 엄마는 자식 일곱을 키우시면서 배겟모에 흘린 눈물 그 숱한 날들이 아까워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뵙지도 못하고 생일이나 어머니날이면 작은 선물 하나로
내 마음 편하자고만 산 날들 난 돌아 앉아 통곡했다

엄마! 아직 다하지 못한 언어들이 허공에서 흩어지고 당신을 생각하면 두 눈 가득 눈물로 가득한데 늘 엄마는 그랬다. 언제나 엄마인 걸로만 알고 진정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도 엄마는 그대로 인줄만 알고 살았다.
그날 밤 난 자는 듯 마는 듯 선잠을 자는데,
너무갑자기떠나시는바람에자식에게할말이라도하려는지 엄마가 꿈속에서 비녀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비녀를 찾았던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자식을 찾고 계셨을까? 생각 해 본다. 부르다가 말문까지 막혀 버렸는지 나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한숨을 토해 내듯 깨어났다.
난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가 눈을 뜨면서 오빠에게 물었다.
“엄마비녀는어디있어?”
비녀가 없었다고 했다 사고로 달아난 것이었다. 엄마는 그랬다. 죽으면서도 분신처럼 달고 다니던 비녀, 먼 나라에 가서 머리를 길어 비녀를 꼽고 다니려는지.. 

비녀란, 사고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엄마는 정정하게 살아계셨을 것같다.
나이가 들어도 총기를 지니고 산 우리 엄마 남씨 집안에 명이 다 짧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친척이 거의 없었다.
어른들이 살아계셔야 왕래가 잦아지는데
단명을 하셔 친척간도 서로모르고 사셨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내가 그명을 이어 오래사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도 엄마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파마하라고, 귀찮게 숱도 없으면서 매일 지극 정성이라며 엄마에게 온갖 달콤한 말로 엄마를 미장원 가자고 해도, 엄마는 평생을 고집한 쪽진 머리를 하고 사셨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으로 밀려 올라오는 그립다는 말도 보고싶다는 말도 눈물로 가슴을 채울까봐, 흘러가는 노을진 강둑에 서서 혼자 가만히 엄마를 불러봅니다.
엄마 엄마 엄마! 어머니 시대엔 남편보다 자식에게 더 의지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세대까지는 부모님과 사랑이 지극한지도...
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찾고싶은 지나는
올린 머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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