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9년 강릉, 포럼 - 시인에게 물어보는 시란, 무엇인가? - 발표 - 이정록

-시인에게 들어보는 시란 무엇인가? 발표 - 이정록 (시인, 문학평론가, 교수)

김성기 | 기사입력 2019/06/15 [13:43]

21019년 강릉, 포럼 - 시인에게 물어보는 시란, 무엇인가? - 발표 - 이정록

-시인에게 들어보는 시란 무엇인가? 발표 - 이정록 (시인, 문학평론가, 교수)

김성기 | 입력 : 2019/06/15 [13:43]

▲     ©이정록

  

▲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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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MTEO NEWS

 

[샘터문학 미래전략을 위한 포럼]

  -시인들에게 들어보는 시란 무엇인가

       발표/이정록

                 (시인, 문학평론가, 교수)


필자는 시인으로서 명제이자 화두인
과연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유를 해봤다
그래서 먼저 동료 시인들이 보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떻게 사유하고 있는지
관찰 분석하고 표본 조사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그럼 그들의 시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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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으로 단지 가리기

        (김언희 작)

시는, 숟가락으로 단지 가리기.
하필이면 숟가락으로?
국자도 아닌?
손바닥도 있는데 굳이 숟가락으로?
가린다고 가려지나, 그게?

그래도 시는, 숟가락으로 단지 가리기.

필사적으로 단지 가리키기. 여기 있어,

그것이! 있어, 여기!

스텐이거나 플라스틱이거나 숟가락이 가리는
가리키는 것은 오직 하나. 단지.
단지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

쓰다 보니, 단지는 특정한 성의 성기를
다정히 부르는 속어이기도 하다.
에고고, 내 꿀단지!
결국 시는, 숟가락으로 이런 저런
단지 가리기, 가리키기.
그런데 왜, 단지를 가리지, 가리키지?
누가? 무엇이? 나는 모른다.
시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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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뜨는 깨달음―깨침

      (김종길 작)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만큼
황당한 물음도 드물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동서고금에
무수히 시도되었건만 아직도 미진未盡한 데다가

시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시를 보는 관점 또한 무수히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읽는 시를 통틀어 서정시라고 하지만

그것이 모두 ‘서정’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E. A. 포우처럼 시를 ‘높이 뜨는 느낌’으로 규정하는 것은

꽤 포괄적이고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그 고양감高揚感의 실체를 ‘깨달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비행기나 글라이더처럼 한 편의 시도
길지 않은 활주滑走 끝에 뜨는 것이지만
그 부력은 ‘깨달음’의 부력이다.
이 경우의 활주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주로 느낌,

즉 감각이나 감정이 그 주된 내용이며

그것의 종말 내지 목적은

어떤 즉각적인 깨달음 내지 ‘깨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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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무어냐고?

   (김종철 작)

장자도 말했고 공자도 말했고,
40여 년 전 저 아득한 미아리
낡은 강의실에서 목월도 말했고
미당도 말했고 김구용도 학생들에게
담배를 빌려 피우며 말했고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동리도 불쑥
한 마디 했던 그것!
오늘은 나도 한 마디 할란다,
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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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암호

  (김종해 작)

내가 너에게 아무도 모르게 ‘사랑한다’는 암호를 편지에 써서 보냈는데,
너는 남들이 모르는 그 암호를 곧
독해讀解하고 답신을 보내왔다.
‘사랑한다’는 나의 말은 너에게 전달되고,

너는 답신 속에 또한 암호를 보내왔다.
나는 그 암호를 받고 기뻤으며 전율하였다.

두 사람이 내통할 수 있는 암호는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시의 한 전형典型이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암호의 압축, 축약된 문맥과 색깔,
상상력과 율동, 그 어법 속에 살아 있는
시의 혼을 담아내는 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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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줄타기의 언어

     (김중식 작)

한때 내게 시는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것만 ‘진짜’였고 나머지는 다 ‘가짜’였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겠다.
시는 적당적당的當適當히 가는 것이다.

끝까지 갔다가, 또는 끝까지 가려다
무서워서 되돌아나오는 비겁의 자리가
시의 마음자리다.
양극단을 다녀온 가운뎃점이라 할 만하다.

경經과 선전포고가 시보다 더 훌륭하다.

하지만 시는 성聖의 비듬과 각질이며,
시는 속俗의 하품과 재채기이다.
해탈의 포즈는 위선이어서 가증스럽다.

자폐의 방백도 위악이므로 못마땅하다.
어느 쪽이든 비루한 삶의 자리로
생환해야 시다.
시는 어쩔 줄 모르는 삶의 흔들리는 언어다.

시는 흔들리는 삶의 어쩔 줄 모르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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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출몰
           (김행숙 작)

내게 시는 인식론적인 대상으로 ‘저만치’
놓여 있지 않다.
그렇다고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장소에 비견될 수 있는 범주도 아니다.
시는 글쓰기의 ‘사건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사태 속에서 움직인다.
‘쓴다’라는 행위 이전에 작품은 어디에도 없다.

작품의 기원은 작가의 ‘머릿속’에(‘가슴속’에도) 있지 않다.

‘사건’은 벌어지는 것이며, 충돌하는 것이며,

‘의외’의 방향으로 번지는 것이다.
사건 속에서 ‘나’는 주도자가 아니라
반응하는 자일 뿐이다.
나는 반응하고, 사랑하고, 폭발하고, 반사하고, 흡수하고,

뺏기고, 훔치고, 달아나면서,

‘나’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나’는 출몰한다.

그러므로 낯선 것(새로운 것)을 시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면서 우리는 낯설어지고 새로워진다.

영원히 시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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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시를 낳는다

     (김후란 작)

시는 그리움의 소산이다.
날마다 그립고 날마다 새롭다.
시인의 정신세계는 무한대여서 어느 선현의 말씀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세상을 보면서’ 산다.
상처가 조개 속에 진주를 키우듯이
삶의 손톱자국이나 어느 순간의 감동이
시의 씨앗이 되고 한편의 시를 낳는다.
시를 쓰는 일은 축복된 일이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감성을 연마하는 일은

나의 삶을 정련하는 행복한 길이기도 하다.

문득 가슴에 울림이 있을 때 가장 적은
말로써 보다 크고 넓고 깊은 세계를 열어보이는 문학세계,

한 편의 시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깊은 뜻까지도 마음에 새기면서

무언가 인간세계에 따뜻이 손 잡아주는
한 역할을 우리 문학인들은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시인은 시를 써서 하늘의 별자리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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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면류관

 (나태주 작)

장님이 문고리 잡듯 잡은 신비였다.
평생을 놓지 못했다.
지난해, 죽음의 골짜기에서 보름만에 탈출하고서도

제일 먼저 찾은 것이 종이와 펜이었고

역시 맨처음 시도한 일이 시쓰기였다.
시는 시인 스스로 선택한 형벌.

하므로 시는 시인에게 고통과 함께 쾌락을 준다.

때로는 쓰러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어나는 방법은 오직 시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참으로 모순이요
이율배반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하기사 우리네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겠는가.

어려운 말이나 까다로운 구문으로 시를 현혹시킬 일이 아니다.
평이한 문장과 단어 속에 보다 깊은
삶의 뜻을 새기고자 한다.
인생의 발견을 담고자 한다. 하면서도 솔직해지고자 한다.
시인이여. 부디 시건방을 떨지 말자.
아는 척, 잘난 척도 하지 말자.
깨달은 척은 더더욱 금물!
오늘도 내일도 시는 그저 시일 따름.
시는 시인이 선택한 가시면류관이 아니던가!

나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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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노향림 작)

시는 나에게 꿈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삶 자체다.
시는 언제나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 불가사의한 매력과 매혹 때문에
그리하여 시는 언어 그 자체라고 믿고 싶다.

시는 끝내 그 실체를 보여주지 않고
언어만 덩그마니 내 앞에 놓아두고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실체를 보여주지 않아 밤새워 시를
탐색해 보면 하얀 손톱만 한,

먼 우담바라꽃이 아롱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짜 우담바라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것은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단지 풀잠자리의 알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왜 언어에게서 늘 상처를 받으며 언어의 경계를

또 넘어서려고 하는 걸까.
언어 그 체를 믿고 또 믿는 것일까.
예술은 절대적으로 새로워야 한다는 명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그 새롭고 새로울 뿐이라는 엄정함에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더욱 분명한 실체를 보여주고 싶어

나의 시는 이미지와 묘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시에다 쉴새없이 긴장과 이완을 되풀이하며

비어 있는 것에는 사물의 존재를 채워주고

채워져 있는 것에는 끝없이 그 의미를 제거하는

이중적 구도를 선호하는 내 성격 탓일까.

시는 꿈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내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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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어야

          (문인수 작)

“길은 식물의 물관부와 같은 것일까.
한참 빨려 들어가다 보면 사람이, 사람의 영혼이

문득 새로 눈뜨거나 피어나는 데가 있다. (중략)

정선에서 우포늪에서 섬진강 가에서 나는 잠시 서 있었고,
그때 내 삶의 궁기가 보였다.
그걸 베껴 적었다.”
내겐 이것이 시가 되었다.

“재미라는 말 안에 인생 전부, 전반을 우겨넣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해본다면 나는 시 쓰려는 궁리,

쓰는 노력보다 더 그럴 듯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시쓰기이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 시가 된다.
시,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 구경일 것이다.”
이것이 시, 시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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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같다

  (문정희 작)

시가 무엇인가 묻지 말라.
시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속성을 지닌 예술이다.
시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완벽한 정의가 아니기 쉽다.
그러므로 오늘은 시인에게 있어 시는 건강과 같다고 말해 둔다.
건강진단서가 지금 당신은 아무 병이 없다고 해도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불건강이요,

아프고 병든 생명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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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어 잡지에 한 번 발표해보기
          (박남철 작)

시는 괄호하고 대학교수이다.
아니, 시는 먼 산을 바라보면서 사진 찍어서

잡지에다 한 번 발표해보기이다.
아니, 시는 손을 턱에다 괴고서 사진 찍어서

잡지에 발표해보기이다.

(4년 전에 옛날 카메라를 잃어버려서,

4년 전 사진들밖에 없어서 ‘디카’를 새로 샀다.

사진들이 잘 나와주어야 할 텐데……)

아니다, 시는 마이클 잭슨처럼, 혹은 나처럼,

사타구니 쪽에다 손을 갖다대고서, (“으!”),

사진 찍어서 잡지에다 한 번 발표해보기이다. (“Dangerous!”)

[아무튼, 사진만은 잘 나와주어야 할 텐데……

그래야 ‘중앙대 여자 교수’하고라도

어떻게 결혼이라도 한 번 해볼 수가 있을 텐데……]

아니다, 시는 어떤 노회한, 그래봤자 노후할 뿐인

어떤 늙은 노벨상 후보선수처럼, (“으!”),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털었다 놓았다를 그토록 열심히 반복해대면서, (“흐!”),

‘후장-엉덩방아-춤’이라도 한 번 추어대면서,

북-유럽-적인 관객들 앞에서 시낭송이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아닐 것인가?

오, 진정, 여한이 다 없을 일일지로다! (“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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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사랑하는 엄혹한 시선

       (박주택 작)

시에 있어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경험은 내용과 형식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경험이 시를 지배할 때
시는 일상의 모습을 띤다.
그런데 일상이 시간과 공간을 거느리며 의식을 지배한다면?
그것은 실재, 진실, 감동 등과 어울려
오래된 시적 미학을 구성하는 데 바쳐질 것.

따라서 경험과 일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중요한 시의 덕목.

그렇다면 일기를 쓰듯, 체험을 고백하듯,
기억을 복기하듯 시를 쓸 것인가?
의식은 무의식의 실재이자 주변. 경험은 추체험의 토대이자 주변.

따라서 경험, 일상, 실재, 진실, 감동 등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는

자재自在가 필요하며 무의식, 추체험, 입체성, 생의 깊이 등을 사랑해야 할 것.

그리고 전체성의 측면에서

자신의 시와 우리시를 성찰하는 엄혹한 시선이 있을 때
시는 한층 시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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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허기진 사람에게만 약동한다

         (박형준 작)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심지어 그것을 제맘대로 갖고 싶어하지

사물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사물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게 되면 나와 사물 사이에

침묵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침묵은 일견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물결을 지니고 있다.

침묵은 아무 말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침묵은 우리에게 허기를 일깨운다.

허기는 ‘안’에서 느끼는 것이지 ‘밖’에서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허기에는 얼마나 격렬한 숨죽임이 있는가.
허기는 또한 비움이며, 그 비움이 아름다움을 불러온다.
나는 비워서 충만해지는 상태가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삶 혹은 시는 허기진 사람에게만 약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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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歌人 

(손택수 작)

그리고 일현금

      一絃琴들의 단 한 줄

           (아폴리네르)

아폴리네르(프랑스, 1880-1918)에 따르면

시는 단 한 줄로 된 현악기다.

그 한 줄은 제목과 본문 사이에,

가인과 악기 사이에, 사물과 꿈 사이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그 한 줄은 잘 벼린 수평선처럼 서늘하고 투명하게 가슴을 벤다.

그리고 복화술사처럼 한 일一자로

두 입술을 포갠 채 무수한 파도를 일으키며 다채색의 진동음을 낸다.

그러나 수평선은 본디 없는 것이 아닌가.

멀찌감치 물러나서야 눈에 들어올 뿐,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없는 그 한 줄, 그러나 분명히 시인의 가슴을 버히고 간 상처 자국,

부재하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노래하게 한다.

비계살 많은 내 시의 살갗이 축축 늘어지고 굳은살이 배길 때면

시퍼런 작둣날 위에 올라선 무당처럼 가끔씩 중얼거려보는 이 한 줄,

시라기보다 그것은 이제 무슨 주문처럼 느껴진다.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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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의 화해

  (신달자 작)

내 몸과 내 정신이 말하는 것을 받아 적는 것,

내 몸과 정신의 난타 공연,

내 몸과 정신에서 도저히 그대로 머물 수 없는 비명과 명상이

세상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것,
내 삶의 경험을 통해 내가 존재하는 자연을 통해

내 시선을 통해 내 감각을 통해 일어나는 현상,

몸 혹은 정신에서 괴어 오르는 함성을
내 언어로 오래 묵혀 발효시킨 한 잔 술이다.

내 뼈 안에서 울리는 내재율이다.
혹은 모든 사물과의 부딪침 충동,

그리고 우주와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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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눈

(신대철 작)

처음 내게 다가온 시는 하나의 뭉쳐진 말이었다.
새들이 풀잎을 말아 아름답게 틀어 놓은
둥지 같은 말이 아니라

온몸을 찌르는 결석 같은 통풍 같은 말이었다.
시를 쓰지 않을 때에도 그 통증은 기억 속에

그대로 살아남아 밤마다 괴롭혔다.

극지를 떠돌면서 나는 그 말이

으르렁거리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비통한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끝없이 갈구하고

분노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생명의 소리는 강렬한 생의 의지 없이는

마침내 그 원초적인 생명성을 잃었다.

그동안 내가 언어로 포획한 시는 대부분 시가 아니었다.
언어가 죽고 소리만 남지 않는 한,
체험된 말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현장을 불러내고

살아 있다고 외쳐대지 않는 한.

최근에는 황야의 눈을 가진 늑대 같은
시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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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결론이란 있을 수 없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 사유가
시인들마다 각양각색이다
그럼 필자 (이정록)의 시 세계는 어떤가?
표본조사한 글 속에 있는가,?
아님 필자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가?
잠들어 꿐꾸고 있는가?
부디 깨어나라
부디 표출하라
똥이든 된장이든 뇌깔겨보라.

 

 

《SAMTEO NEWS》

발행인 이 정 록 회장
편집인 주간 조기홍 기자
보도 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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